[데스크 칼럼] 이랑이 고랑 되고 고랑이 이랑 된다

넥스트시선 / 김인환 기자 / 2020-08-06 18: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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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사람끼리 살아야 맘 편하다.”

은마아파트 입주자 대표는 6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임대아파트 들어오면 집값 안 나간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부자와 빈자가 같은 단지에 살면 서로 피해를 본다고 했다.

그의 입에서는 ‘휴거’(휴먼시아에 사는 거지), ‘엘사’(LH에 사는 사람) 등의 단어도 나왔다. 비록 그는 ‘웃픈’ 얘기라며 애둘러 표현했지만, 은마아파트 소유자들의 속내를 정확히 표현했다.

집 안엔 바퀴벌레가 돌아다니고 여름이면 건물 지하실 쓰레기 더미에서 번식한 모기떼와 벌레가 극성을 부린다. 수도를 틀면 녹물이 나오고 이따금씩 부식된 콘크리트 조각도 떨어진다.

더욱이 지은 지 40년이 넘어 그 수명도 다했다. 제품 자체로만 보면 철거비용이 더 들어 재산 가치가 전혀 없는 제품이다. 하지만 거래가는 20억원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20억원을 묻어놓은 채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것들을 기꺼이 감내하며 버텼다고 한다. 오직 ‘새집에 살겠다’는 기대로.
하지만 LH나 SH가 지은 집에선 살 수 없다고 한다. 더욱이 정부 제안대로라면 상당 가구가 공공임대로 채워지는데 그 꼴은 더욱 볼 수 없단 뜻이기도 하다.

‘새집’이면 더 바랄 게 없다는 자신들의 주장과 좀 다르지 않은가. 아마도 ‘개발 이득’과 ‘신계급주의’ 때문일 것이다.

 

▲ 1980년대초 은마아파트 모습 <사진=SBS 캡처>

‘이랑이 고랑 되고 고랑이 이랑 된다’고.

1979년 은마아파트 분양가는 2천만원이었다. 당시 그곳은 비만 오면 물이 차 썩어 문드러진 땅이었는데 삼보가 약간의 로비로 용도변경 해 좀 비싼 서민아파트를 지었다. 하지만 1985년도에도 기준시가는 2400만원으로 당시 그랜저 가격(1986년식 2500만원)에도 못 미쳤다.

1989년 필자가 재수하던 시절, 같은 학원 친구는 “어디 사니?”란 질문에 ‘대치동’ 대신 “은마아파트 산다”고 꼭 답했다. 당시 촌동네에 산다는 것이 창피했던 건지 ‘은마’에 사는 게 뿌듯했던 건지는 모른다. 마치 “화성시 산다” 대신 “동탄 산다”고 답하는 심리처럼.

아무튼, 고랑이 이랑 되어 그곳 소유주들은 지금 수십억 자산가가 됐다.

백만달러, 한화로 약 12억원 이상의 순자산을 보유한 이들을 일컬어 ‘백만장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18세기 용어이니 요즘 개념으로 치자면 ‘수십억 자산가’ 정도 되겠다.

우리나라에서 순자산 백만불 이상 보유한 사람은 지난해 기준 70만명 정도다. 적은 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다고 볼 수도 없다. 흔히들 “돈 십억으로 뭘 하냐”며 허세에 동참하지만 ‘돈 십억’을 모으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보통의 직장인이 모으려면 알뜰하게 20년은 걸린다.

20억원이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최근엔 ‘자아실현’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선진국 기준으로도 적은 돈이 아니다. 그만큼 서민에겐 큰돈이다.

좀 사는 이들은 서민들이 자신들을 욕하는 이유가 단지 ‘돈이 많아서’인 거라고 착각한다. 그러면서 항변한다. “돈 있는 게 죄냐”고.

이렇듯 원인 분석을 못 하면 풀어가는 과정도, 답도 틀리게 마련이다.

바닥에 깔고, 천장에 이인 채로 조금 더 욕심부리다 써보지도 못하고 가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돈 많은 건 죄가 아니다. 돈 많은 사람답게 살면 된다. 그리고 그 가치는 본인들이 정하기 나름이다. 이랑이 다시 고랑 되기 전에 말이다.

 

김인환 기자 director@nex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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