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뉴스 인터뷰] <여성 직업인을 만나다> ‘마녀원장’ 배은경

여성 직업인을 만나다 / 김혜민 기자 / 2020-07-01 15: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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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난 만큼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만날수 있다.
이들의 일은 어떤지 궁금했다. 여러 여성 직업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일을 소개한다.
▲ 관리형 독서실 '나를 찾는 숲' 배은경 원장 <사진=김혜민 기자>

 

[넥스트뉴스=김혜민 기자] 좋은 습관은 들이기 어렵지만 그만큼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몸 상태나 주변 환경이 달라져도 계획한 하루를 실천할 수 있게 해 주기도 하고,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진학하고 나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들 한다. 하루종일 학교에서 짜여진 시간표대로 수업을 듣고 나머지 공부를 하다가 모든 걸 알아서 하라며 대학에 내던져지니 갈피 잡기가 영 쉽지 않다는 거다.

네가 하고 싶은 건 대학 가서 다 하란 말을 듣고 자랐다면 성인이 되자마자 밤새 술을 마실 수도 있고 여기저기 놀러 다닐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몇 달 하면 지치게 마련이니까.

이번에 만난 배은경 씨는 입시 지도만 30년 차로, 자신을 ‘마녀원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런 별명이 붙은 이유가 궁금했다.

“전 학생들을 대할 때 강압적으로 하지 않아요. 웃으면서 접근하는데 정신 차려보면 저한테 말려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붙은 별명이에요. 좀 유치한가요?”

누군가를 이끌고 가르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마녀원장’이란 별명이 생길 만큼 입시지도를 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가르치는 게 적성에 맞냐고 묻자 배은경 씨는 고개를 저었다.

“어릴 땐 저 잘난 맛에 했어요. 하다 보니까 노하우도 쌓이고 흥미가 생겼죠. 이 일에 보람을 느낄 땐 제가 가르친 학생들이 먼저 연락을 해 올 때예요. 안부를 묻거나 뭐 술을 한 잔 같이 할 수도 있고요. 아직도 나를 기억해 준다는 게 고마운데, 그 친구들도 제가 기억에 남는다고 하더라고요.”

기자가 ‘은사님인 거네요?’ 하고 묻자 배은경 씨는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전 너무 고맙죠. 입시 교육을 했지만 다른 학원이나 독서실에서 공부를 시키는 방식이 저와 맞지 않아 고민이 많았는데, 제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하고 대답했다.

배은경 씨가 지향하는 교육 방향이 궁금했다. 입시의 정답은 스파르타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전 그런 게 진짜 싫어요. 할 일도 없는데 일단 학원이나 독서실에 나와서 앉아있으라고 하는 거요. 그렇게 해서 생기는 건 공간에 대한 트라우마뿐이에요. 본인이 주도적으로 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대학에 가도 뭐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능동적으로 하더라고요.”

대학을 보내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목표가 뚜렷한 대학 생활을 하게 만드는 것이 교육 철학이라고 했다. 배은경 씨는 “뭐든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그게 큰 자신감이 되더라고요. 그걸 바탕으로 피드백을 주면 반영도 더 빨라요”라고 덧붙였다.

배은경 씨는 입버릇처럼 “45살에 은퇴할 거야”라고 말했지만, 내년이면 쉰이 되는 지금 일이 가장 즐겁다고 했다.

“45살이 제 딸 입시가 끝나는 나이였어요. 그래서 그때까지만, 그때까지만 하고 일을 했는데 딸이 대학에 가고 나니까 아쉽더라고요. 결혼하고 나선 아내로, 출산하고 나선 엄마로 사느라 제 인생이 없었어요. 뒤돌아보니 정말 그 자리만 들어낸 것처럼 흔적이 없는 거예요. 지도하는 학생을 가르칠 땐 뭐든 주도적으로 하게 하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정작 제 인생은 그렇질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오십이 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독서실을 차린다고 했을 때 딸도, 주변 사람들도 그만하면 됐으니 쉬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지만 배은경 씨는 아무도 터치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일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며 웃었다.

“입시 경력만 30년이에요. 힘들 건 알고 시작했죠. 하지만 저 혼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무리하게 학생을 받지도 않아요. 그리고 제가 학생들 성향을 좀 빨리 파악하는 편이라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지 금방 감이 잡혀서 생각보다 여유로워요.”
 

▲독서실 전경. 학생마다 번호가 정해져 있다. <사진=김혜민 기자>

꾸준히 찾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30년 동안 입시 지도를 했을 텐데, 배은경 씨가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했다. 배은경 씨는 주도권과 당근을 적절히 준다고 했다. 일주일 동안 얼마나 공부할 건지 정하는 건 학생 몫이다. 그걸 보고 하루 계획을 짜주고 일찍 마치면 바로 집에 돌려보낸다.

배은경 씨는 잘 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이 공부하는 장소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많이 노력한다고 했다. 목표량을 달성하면 바로 집에 돌려보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른 방법은 어떤게 있냐고 물었더니 “오답 노트를 개인별로 만들어줘요. 우선 문제집을 다 스캔해서 틀린 문제만 뽑아서 순서를 섞어서 계속해서 새로 푸는 방식이에요"란 대답이 돌아왔다.

 

▲오답 노트 제작을 위한 도구 <사진=김혜민 기자>

번거롭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배은경 씨는 “진짜 손이 많이 가요. 하지만 제일 확실한 방법이죠. 아이들을 가르칠 때 절대 화 내거나 소리 지르지 않아요. 아직 어린데 공부 때문에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대답하며 겨우 열 몇 살인 아이들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학부모와 만날 때 정확하게 얘기하고 시작해요. 안 되는 건 안 된다 하고, 벌점 같은 거 없고 스파르타 방식이 아니니 귀가 시간도 다른 독서실보다 빠를 거라고요.”

학부모가 싫어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방식이 안 맞으면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강압적인 방식으로 지도하는 학원이나 독서실은 이미 포화상태다. 배은경 씨는 본인 방향대로 가닥을 잡았고, 이 방향이 30년간 꾸준히 자신을 찾는 사람이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제 곧 오십이잖아요. 인생 2막이 시작된단 기분이 들어요. 이 나이되고 뭘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 대단하다. 열심히 해. 하고 말죠. 요새 필라테스를 배우고 있어요. 제 키가 170cm이 넘어요. 이 나이에 정말 큰 키잖아요. 시니어 모델이 해보고 싶어서 체형 교정 중이에요. 다들 응원해 주더라고요.”

배은경 씨는 인터뷰 전날도 갑작스레 강릉 여행을 다녀왔다며 “일해야 쉬는 것도 재미있고 기대가 되는 것 같아요”하고 웃었다. 일은 하고 있지만 자유롭고 스트레스도 적다고 했다.

기자는 늘 중년의 모습이 궁금했다. ‘늙는 게 죽기보다 싫다’는 입장은 아니지만, 도무지 긍정적인 방향으론 상상이 되질 않았다. 결혼 생각이 없으니 당연히 아이도 없을 거고 기자 성격에 이웃과 잘 지내지도 않을 것 같으니 독립하게 되면 친구와 매달 집 전화로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생사를 확인하자고 약속하기도 했고 30대가 되면 고독사한 가구를 청소해주는 업체의 견적을 받아 적금을 들어야겠단 생각도 했다.(극단적이지만 기자는 항상 최악을 생각해 둔다)

<여성 직업인을 만나다>를 진행하며 20~30대 여성을 여럿 만났다. 기자보다 어린 나이거나 ‘뭐 해 먹고 살지?’ 싶은 또래 여성에게 길은 다양하고,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라는 걸 없다는 걸 전해 주고 싶었다. 기자도 취직 전에는 진로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으니까.

여러 번 언급했듯 기자는 이 코너를 정말 좋아한다.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또래 여성들이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고 어떤 미래를 그리는지 보고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인 일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큰 자극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꼭 중년 여성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궁금했다. 하고 싶은 대로 잘하는 일을 하고 또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배은경 씨는 정말 활기찼다. 인생 2막, 도전이 두렵지 않다는 배은경 씨를 만나고 나니 기자도 뭔가 새로운 일을 벌이며 중년을 맞을 수도 있겠단 기대가 생겼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 이 인터뷰를 읽는 모든 독자와 배은경 씨의 인생 2막이 뮤지컬 영화처럼 즐겁고, 먼 미래를 그릴때 늘 기대된다는 동사가 따라붙기를 바란다.

 

김혜민 기자 enam.her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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