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리뷰] 연극 <모파상에 대한 고백> - 을지공간

공공연한 문화리뷰 / 김혜민 기자 / 2020-06-29 13:20:17
  • 카카오톡 보내기

 

[넥스트뉴스=김혜민 기자] 기자는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좋아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것 중 제일 소중한 걸 팔아 하등 쓸모없는 선물을 준다는 게 좋다. 얼마나 허무하고 낭만적인 쓸데없는 짓인가. 낭만이라는 게 원래 별 쓸모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첫 문단을 읽고 기자가 염세적인 사람이라고 느꼈다면 기 드 모파상의 작품을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기자에게 ‘기 드 모파상’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목걸이>다. 초등학생 때 처음 읽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이후 <비계덩어리>를 접하고 모파상이 염세주의자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파상은 말년이 돼서 갑작스레 <오를라> 시리즈를 낸다. <오를라>가 어떤 작품인지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H.P 러브크래프트의 작품과 묶여 언급되는 작품이다. 모파상의 이전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오를라>는 기 드 모파상이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는 괴생명체에 관해 쓴 책이다. <모파상에 대한 고백>은 정신착란을 치료하기 위해 방문한 앙리와 작가 모파상에 관한 연극이다.

을지공간의 2인극 <모파상에 대한 고백>은 <오를라>의 오마주이며 모파상에게 보내는 찬사이기도 하다. 배우 겸 연출을 맡은 장정인 씨는 “모파상의 작품 방향이 이렇게까지 바뀐 이유가 궁금했어요”라고 입을 열었다.
 

▲남성극 앙리 겸 연출 장정인 씨 <사진=김혜민 기자>

 

“모파상은 <오를라> 집필 때 매독을 앓고 있었죠. 지금이야 의학적으로 매독이 정신착란을 일으킨다는 게 증명됐지만, 당시에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모파상은 자신이 정신착란을 겪고 있다는 걸 부정했을 텐데 그럼 <오를라>가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인 기록일 수도 있지 않을까? 여기에서 극이 출발했어요.”

<모파상에 대한 고백>은 여성극과 남성극이 나뉘어 있다. 단순히 젠더리스 캐스팅이 아니라 대본 일부가 다르다고 했다.

“모파상은 섬세한 사람이에요. 작품에 여성 혐오적 요소가 굉장히 많지만 동시에 여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여성이 표현하는 모파상을 꼭 보고 싶었어요. 실제 성별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극이 중반까지 진행됐을 때 기자는 ‘모파상이 이렇게까지 광인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장정인 씨는 모파상을 일부러 더 그렇게 표현했다고 대답했다. “존재의 격돌에 관한 내용이고 2인극인 만큼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싶었어요.”

기자는 ‘에펠탑 내부만이 파리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라며 그 안에서 식사를 한 모파상을 괴짜라고 생각했는데 장정인 씨가 해석한 모파상이 궁금했다. 장정인 씨는 모파상이 가진 아집이 <오를라>를 쓰게 된 이유일 거라며 말을 이었다.

“모파상은 염세적인 사람이에요. 기행도 많이 했고요. 하지만 전쟁을 겪고 난 뒤 보이는 염세적인 모습이 일종의 자기방어란 생각이 들었어요. 모파상은 자연을 사랑했고 그래서 에펠탑을 증오했죠. 하지만 에펠탑 내 카페테리아에 자주 가요. 누군가는 이걸 기행이라고 하지만 전 저항정신이라고 봐요. 자신이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존재와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인 거죠.”

공포와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가진 사람, 그렇다면 모파상을 광인으로 표현하지 않고도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모파상은 똑똑한 사람이에요. 당대 작가로 이름도 꽤 떨쳤고요. 그런데 말년에 자기 논리를 부정당하잖아요. 자기는 똑똑히 보고 느끼는 존재인데 사람들은 그걸 병증으로 치부하니 미쳐버릴 것 같았겠죠.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논리적인 설명을 할수록 정신병의 증거가 되고요.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 사는 건 모파상한테 어떤 의미였을까 고민했습니다.”
 

▲피아노 <사진=김혜민 기자>
▲책상과 욕조 <사진=김혜민 기자>

극에는 대표적인 오브제 세 가지가 등장한다. 피아노, 욕조, 책상. 욕조에는 정말 물이 채워져 있고 이는 다양한 연출에 사용된다. 극에는 폭력적인 장면이 꽤 많이 등장한다. 관람 자체를 버거워하는 관객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이런 연출을 고집한 이유를 물었다.


“호불호가 갈릴 걸 알고 썼어요. 물리적인 충격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위계나 권력을 이용해 휘두르는 폭력에 아주 민감하지만 19세기에 진행된 정신치료법엔 말도 안 되는 게 정말 많아요. 치료인 동시에 폭력이죠. 사실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자기 자신을 괴롭힌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그 기억을 건드리고 싶었어요. 동시에 대화로 해결될 수 없을 만큼 응어리진 감정과 인간의 야만성에 대한 화두도 던지고 싶었습니다.”

권력을 이용해 휘두르는 폭력에 민감하다는 얘기에 흥미가 생겼다. 장정인 씨는 “그런 경험 있지 않으세요? 나는 진짜 아파 죽겠는데, 의사는 너무 덤덤해서 억울했던 경우요”라고 말했다.

“물론 의사는 항상 평온을 유지해야죠. 휘둘리는 모습이 보이면 환자는 더 불안해지니까요. 하지만 앙리와 모파상 사이엔 위계가 있습니다. 앙리는 인지하지 못 하지만 권력을 가진 쪽은 앙리고 모파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요.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죠. 정신적 공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정신병을 치료하려는 건 엄청난 폭력이에요. 이걸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극 중 앙리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파상에게 “선생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긁으시면 안 됩니다”하고 매우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모파상은 계속해서 이런 의사들을 만났을 거고, 이건 분명히 폭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파상 역을 맡은 임윤비 배우도 공감 없는 정신치료는 폭력이라는 말에 동의했다. 

 

▲여성극 모파상 역 임윤비 배우 <사진=김혜민 기자>

 

“애드리브를 하는 장면이 꽤 많아요.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사 중 하나가 ‘지겨워’예요. 실제로 모파상을 연구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파상은 작가고, 지성인이에요. 그만큼 자신이 인식하는 존재에 대한 설명도 무척 논리적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아무도 모파상을 믿어주지 않아요. 아무리 논리적이어도 병증으로 치부됐을 테니, 모파상이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겠죠.”

임윤비 배우는 폭력적인 극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제가 맡았던 역 중에 가장 악랄한 캐릭터는 해방기 시절의 동아일보 기자예요. <해방>이란 작품이었는데, 좀 탐욕적이긴 해도 모파상처럼 으스스한 캐릭터는 아니었어요. 누굴 때리는 연기 자체가 처음입니다.”

인터뷰 내내 차분하고 질문을 하면 잠시 생각한 뒤 답을 하던 임윤비 배우에게 모파상은 쉬운 역할이 아닐 것 같았다. 맡은 이유도, 모파상을 표현하기 위해 들인 노력도 궁금했다.

“장정인 씨와 3년 전에 연극을 하나 같이 했어요. 이 극을 쓰면서 저를 떠올렸다고 하더라고요. 대본을 받고 ‘아, 모파상 배우는 참 힘들겠다’ 생각했어요. 당연히 제가 앙리 역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실제 성격도 앙리와 비슷하고요.”

그럼 임윤비 배우는 모파상이란 캐릭터를 어떻게 연구했는지 물었다.

“전 어떤 인물이든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파악하는 것에서 연구를 시작해요. 모파상은 고독한 사람이고 남들을 관찰하며 살아가는 염세주의자죠. <비계덩어리> 같은 작품을 보면 정말 시선이 날카롭잖아요. 통으로 모파상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어요.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임윤비 배우는 무엇보다 화를 내는 장면이 어려웠다고 했다. “전 화가 잘 안 나요. 웬만한 일은 다 이해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분노의 단계가 1에서 10까지 있다고 하면 1정도 화날 일인데 7만큼 화를 내는 사람이 있잖아요. 갑자기 감정을 확 분출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 사람들을 관찰했어요.”

 

▲임윤비 배우는 관객이 모파상이란 작가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걸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사진=김혜민 기자>


모파상의 광기를 표현하는 데는 <오를라>를 읽은 게 큰 도움이 됐다. 임윤비 배우는 “오를라를 읽으며 어린 시절 감각적으로 독특한 경험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어요. 그걸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확장해 표현했죠. 관객이 <모파상에 대한 고백>을 보고 나서 기 드 모파상의 생애에 관심을 가지거나 다른 작품을 읽어볼 생각을 한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앙리 역을 맡은 가득희 배우는 “정말 트레이닝이 많이 되는 작품”이라며 팔이며 다리 곳곳에 든 멍을 보여줬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구체적으로 쓸 순 없지만, 앙리 역시 모파상 못지않게 힘든 캐릭터다. 가득희 배우는 “이 극을 하고 있으면 저 자체가 정상적이란 생각이 안 들어요. 정상과 비정상에 관한 경계가 무너집니다. 그걸 나누는 것도 극에 맞지 않는다고 봐요”라며 웃었다.

하지만 사회는 계속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려고 한다. 앙리 역시 만나기 전부터 모파상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극 중 이런 이분법을 해체하는 장면이 있는데, 연기가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오히려 초반이 힘들죠. 모파상에게 휩쓸리면 안 되거든요. 앙리는 계속 이성적인 모습을 유지해야 하고, 모파상은 감정적으로 격양돼 있잖아요. 중심을 잡기 위해 많이 신경 씁니다. 임윤비 배우와도 얘기를 많이 나누면서 합을 맞추는 데 집중했어요. 완급조절이 중요한 극이거든요.”


▲여성극 앙리 역의 가득희 배우 <사진=김혜민 기자>

<모파상에 대한 고백>은 공연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딱 한 장면, 그 분위기를 환기하는 신이 있다. 가득희 배우는 그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둘이 함께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다.

“결국 앙리도, 모파상도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적인 면모가 보이는 장면이고 앙리와 모파상이 교감하는 장면이기도 해요. 정말 큰 의미죠. 앙리는 모파상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기자도, 동행인도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나 파격적인 작품이어서 상당히 당황했다. 하지만 김태형 을지공간 대표는 계속해서 이런 2인극을 올릴 예정이라고 했다.

“대학로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을지로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잖아요. 서울 중심부인 동시에 변두리고, 실로 다양한 면이 상생하면서 굉장히 이질적인 모습들이 엉켜있어요. 역설적인 공간이죠. 이런 흥미로움에서 영감을 받고 ‘Off-대학로’라는 예술적 비전을 견고하게 다져나가고 싶어요.”

독창적이고 자립적인 작품관을 추구하는 동시에 기존 대학로의 문제점이던 인적 네트워크와 고착화한 작업방식을 탈피하는 것. 김 대표는 지속적이고 발전 가능한 새로운 공동작업의 틀을 생산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확실히 <모파상에 대한 고백>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분위기의 연극은 아니다. 김 대표는 천천히 을지공간의 작품세계를 정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도, 동행인도 남성극은 어떨지, 이들의 철학을 담은 다음 작품은 어떨지 기대된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을지공간을 나섰다. 7월 12일까지 극이 연장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쩌면 조만간 남성극을 보기 위해 을지공간을 다시 찾을지도 모르겠다.

 

김혜민 기자 enam.here@gmail.com 

[ⓒ 넥스트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