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뉴스] 광복 75주년, 조선총독부가 쓸어버린 경복궁···멀고 먼 복원

포토뉴스 / 김승민 기자 / 2020-08-16 1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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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년경 동궁의 모습. 전각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사진=문화재청>

 

[넥스트뉴스=김승민 기자] 정도전이 심혈을 기울인 경복궁은 조선왕조 5대 궁 중 정궁으로 태조4년(1395)에 창건됐다. 이후 선조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됐다가 고종5년(1868) 흥선대원군이 재건했다.

다만 현재 우리가 아는 경복궁은 한 나라의 궁궐치곤 너무나 허전하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1907년경 제작한 경복궁의 배치도면 ‘북궐도형(北闕圖形)’에 따르면 19세기 말 경복궁 안에는 509동(6806칸)의 전각이 있었다. 엄청난 규모였다.

하지만 광복 후 궁 안에 남겨진 전각은 40동(857칸)뿐이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각 약 460동, 6000칸이 사라진 것이다.

 

▲ '북궐도형'의 경복궁과 조선총독부가 세워진 후의 경복궁 <사진=문화재청>


이유가 뭘까.

당시 일제는 조선을 말살하기 위해 인왕산에서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정기를 끊기 위한 작업을 했다. 이에 경복궁 근정전 앞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짓기로 했다. 건축비는 지금 가치로 650억원. 일본 내에서도 ‘과도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당시 조선 총독이었던 데라우치는 경복궁 전각 4000여 칸을 경매에 부쳐 이 자금을 해결했다.

일본 내 궁궐은 문화재라며 철저히 보호 유지관리 하면서도 조선의 궁궐은 철저히 파괴하는 야만성을 드러낸 것이다.

 

▲ 조선총독부 건물 완공 후 모습 <사진=KBS>


더구나 조선총독부 건물은 기존 인왕산~관악산 방향에서 동쪽으로 3.75도를 틀어 남산에 자리한 일본 신사를 바라보도록 지었다.

해체한 경복궁 전각들은 일본인들에 팔려나갔고 집안 장식용이나 때로는 요정 건물의 기둥으로, 심지어 이토 히로부미의 사당을 만드는 데에도 쓰였다.

조선병합의 1등 공신이었던 데라우치의 만행은 끝이 없었다. 입법·사법·행정을 독점한 그는 무력에 의한 강압 통치로 헌병대를 공권력의 도구로 쓰고 학교 선생들에게 칼을 차고 수업을 진행하도록 했다.

언론을 통제했고 특히 일본에서는 없어진 ‘태형’ 제도를 조선인에 한해서는 유지토록 하는 등 조선인의 인권을 유린했다.

또 그는 조선의 수많은 문화재를 수탈한 행위로 악명이 높았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1916년부터 1926년까지 무려 10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완공됐다. 당시 아시아 최고 규모라 불렸으며 동원된 조선인은 200만명에 달했다.

 

▲ 1980년대 거리 모습 <사진=KBS>

▲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계획을 밝히는 김영삼 대통령 <사진=김영삼 민주센터>


1995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과거사 청산’과 ‘역사 바로 세우기’를 천명하며 총독부 건물 철거를 발표했다.

당시 일본인들에게 조선총독부 관람은 한국여행의 필수코스였는데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상징하는 ‘반성’의 의미가 아닌 과거 일본 제국의 향수를 ‘추억’하는 의미였다는 점에서 격한 반일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일본은 “건물 해체와 이전 비용을 지불하겠다”며 이를 보존해 줄 것을 한국에 요청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이 같은 일본의 적반하장 식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리고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참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 철거되는 조선총독부 첨탑 <사진=KBS>

▲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후 모습 <사진=KBS>

▲ 본격적인 복원사업이 진행되기 전 경복궁 모습. 근전정을 제외하면 적각을 거의 볼 수 없다. <사진=KBS>

김영삼 정부는 총독부 건물 맨 위의 첨탑을 걷어낸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철거를 시작했다. 첨탑은 현재 천안 독립기념관 내 가장 서쪽 한 부지, 계단으로 둘러싸인 5미터 깊이의 중앙에 전시돼 있다.

일제의 위용을 과시하던 첨탑이 지금은 내려 볼 수 있는 무덤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 철거된 첨탑이 독립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사진=KBS>

다만 총독부 건물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을 기념하는 태극기 게양식이 열린 뜻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이후 1962년 11월부터는 정부 청사로 활용했고 1986년 6월부터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했다.

경복궁 복원사업은 1차(1990~2010년), 2차(2011~2030년)에 걸쳐 전각의 76%까지 복원할 계획이다. 1차 복원은 경복궁의 뼈대를 갖추는 작업이고 2차 복원은 임금의 수라간과 각사 등 많은 부속건물을 지어 살을 붙이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이 사업은 오는 2045년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하지만 경복궁을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일제의 만행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인 셈이다.

 

김승민 기자 reporter@nex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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